박미영 기사입력  2021/12/28 [16:54]
생태이야기- ‘느티나무’
//박미영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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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창의력이 쑥쑥 커가는 노거목 ‘느티나무’

 

내가 자란 만종리는 아주 깊은 산골이다. 가끔씩 오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던 별방리에서도 걸어서 1시간은 족히 걸어야 주막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 주막거리를 지나 집으로 올라가는 중간 쯤 족히 200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는 항상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이자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오가며 돌멩이를 주워 탑을 쌓고 소원을 빌던 곳이었고 단오때는 넉넉한 느티나무 가지에 동네 청년들이 메어놓은 그네에 올라타 신나게 세상구경을 하던 곳이었다.

 

겨우내 앙상하던 가지에 봄이 오면 연두빛 고운 새순을 내놓아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그늘을 만들어 잠시 무더위를 피할 수 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면 가지마다 소복이 쌓인 눈의 모습도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웠다.

 

하연선생은 나이 들어 벼슬을 내려놓고 낙행하여 신천동 계란마을에서 여생을 보냈다. 일찍이 그는 자기의 묏자리를 미리 잡아 놓은곳에 쓰게 했으며 그 주위에 홰나무(이하 느티나무)를 심어 놓았다. 수백 년이 흘러 하연의 산소 주변에는 그가 심은 느티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큰 숲을 이루었고 이 숲은 보는 사람마다 탐을 내게 되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후손들이 느티나무를 팔아 없애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무렵 인천관아에서는 부사로 내려오는 사람은 부임하는 날 원인도 모르게 횡사하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여러 번 같은 일이 반복되자 조정에서는 괴이하게 여겨 힘세고 담력이 있는 사람을 가려서 부사로 내려보내게 되었다. 새로 부임한 부사는 인천관아에 도착해 육방관속을 모두 불러 명령하기를 “내가 밤을 세워볼 터이니, 동헌 곳곳에 불을 훤하게 밝혀 놓도록 하라”고 하였다.

 

한밤중이 되자 갑자기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부르는 소리 같은것이 들려오는듯 하더니 재상의 조복을 입은 사람이 부사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부사는 순간 놀랐으나 뜰로 내려가 재상을 맞으면서 동헌 위로 오르도록 안내한 다음 허리를 굽혔다.

“신임부사 인사드리옵니다.”

“고맙소, 나는 아무 때의 재상 하연이오. 내게 한가지 소원이 있어서 부사에게 이렇게 오면 모두 놀라서 죽고 말았는데 이제 그대에게 내 원을 말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쁜일이오.

소래산에 있는 내 무덤 주위에 느티나무 숲에서 가끔 밤에 놀았는데 자손들이 팔아버려서 거의 다 베어지니 그 나무들을 베지 못하도록 하여 주오.“

이리하여 부사는 자손을 찾아가 느티나무를 베지 말도록 하고 벤 자리도 더 심도록 단단히 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몇 년 전 소산서원 유아숲에서 근무할 때 이야기다. 소산서원 앞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 소재였다. 3월이면 제일 처음 만나는 날 이 느티나무 할아버지에게 인사로 시작했다. 그랬더니 올 때마다 지나가며 느티나무 할아버지한테 아이들이 먼저 인사를 하곤 한다.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상상력을 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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