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연순 취재국장 기사입력  2018/08/07 [16:20]
[문화가산책_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비전시흥 포커스4호 수록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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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 주간시흥 추연순 취재국장

 

▲     © 주간시흥

 

 

이승의 모든 인간은 죄를 짓고 산다. 그리고 그들 중 아주 일부만이 진정한 용기를 내어 용서를 구한다. 그들 중 아주 극 소수만이 진심으로 용서를 받는다.”이 영화 말미에 염라대왕이 하는 말이다. 꽤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모두 죄를 짓고 산다는 것은 자신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벌의 몫을 가지고 있다는 말일 수 있다. 이 영화에 종교를 덧입혀 인간의 영생과 구원을 논하고, 환생과 윤회를 논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논하는 우는 범하지 말기로 하자.

나 또한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최초의 웹툰 원작으로 관객 14백만을 돌파한, 박스오피스 2위의 흥행기록을 가진 블록버스터급 액션 판타지 영화다라는 식으로 매체들이 떠드는 요란한 영화의 화려함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 모두가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저마다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매 순간 영원을 살 것처럼 작은 이익에 눈멀고, 영원을 살 것처럼 집착하면서 쌓아가는 업에 대해 한 번쯤은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신과함께 기본 설정구조는 사람이 죽어 망자가 되면 저승에서 49일에 걸쳐 일곱 번의 재판을 받게 된는 것으로 되어있다. 저승의 일곱시왕은 거짓, 나태, 불의, 배신, 폭력, 살인, 천륜을 심판하며, 모든 재판을 통과한 망자만이 다음 생으로 환생한다.

또한 망자의 지옥재판에 변호와 지옥세계 안내를 겸한 3명의 저승사자 동행으로 3차사는 각각 강림차사, 일직차사 해원맥, 월직차사 이덕춘이라는 인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 중 이들은 지난 천년 간 49명의 귀인을 환생시키면 그들도 인간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환생이 된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김자홍은 그들이 190년만에 만난 정의로운 망자이자 48번째 환생을 가능하게 해줄지 모를 귀인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김자홍씨께서는 2017428일 오늘 예정대로 무사히 사망하셨습니다.”영화 초두에 김자홍의 죽음을 맞으러 온 월직차사 이덕춘이 일직차사 해원맥에게 고하는 첫마디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죽음의 시간 망자를 맞이하는 이의 입에서 나오는 예정대로 무사히 사망했다는 알림은 인간에게는 이승에 대한 회한과 미련으로 발길이 무거운 것과 대조를 이루며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가 일상처럼 매우 가볍고 경쾌하게 다가온다. 마치 어느날부터 일찌기 준비된 아름다운 이벤트마냥...기다렸다는 듯이...그렇게.

 

귀인 김자홍은 저승 3차사 강림, 덕춘, 해원맥을 따라 49일간 지옥의 7재판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의 이승에서의 삶의 과정들이 낱낱이 해부된다. 살아생전의 망자의 업을 들여다 보는 업경을 통해 적나라하게 죄가 드러나고 자홍의 모든 지난 삶의 순간들은 죄로 정의되고 죄로 무게 지워지면서 난관에 부딪힌다. 자홍이 정의로운 망자로서 평생을 착하고 이타적으로 살았음에도 사람일이 어디 마음먹은대로 되어지고 의도한대로 흘러가 지던가. 아무리 착한 사람이더라도 본의 아니게 눈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고 마음 아프게 한다.

이쯤해서 자홍의 삶을 들여다보자.

자홍은 15년전 어머니와 동생을 두고 집을 뛰쳐나오기 전 삶의 가망이 없는 의식없는 병자인 어머니와 영양실조로 허약한 상태의 동생을 가져 암담하게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고등학생이었다. 어느날 자홍은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과 동생 수홍은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할 목적으로 의식없는 어머니 얼굴위에 베게를 덮어 누르려다 잠에서 깬 동생에게 제지당하자 수홍에게 마구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뛰쳐나왔다. 이후 자홍은 심한 죄책감으로 죽는 날까지 수홍과 어머니만을 생각하며 살자고 마음먹고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소방관 일 말고도 식당, 대리운전, 시장 노가다 등 각종 알바를 뛰면서 돈을 벌어 병자인 어머니와 법관을 꿈꾸며 공부 중인 동생 수홍을 위해 번 돈을 보낸다.

15년동안 죄책감 때문에 한번도 집에 찾아가보지 못하고 죽자고 일해 돈만을 보내는 자홍은 죽은 동료소방관의 딸에게 하늘에서 보내는 아빠의 편지를 거짓으로 써 보내기도 하고, 점차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에게는 자신이 마치 결혼해 예쁜 아내와 아들을 가진 행복한 가장인 것처럼 거짓 편지를 꾸며 보내며 살아가던 도중 한 화재현장에서 어린아이를 구하다가 저승을 맞이한 것이다.

▲     © 주간시흥

지옥에서 기다리는 7개의 재판은 죄가 가벼운 순서로 진행되며 자홍과 3차사 일행은 변성대왕이 다스리는 살인지옥으로 펊펄끓는 용암의 불지옥 화탕영도를 통과하고, 세 개의 큰 통나무 사이에 끼지 않으려면 쉬지않고 뛰어야 하며 물속으로 뛰어들면 날카로운 이를 가진 물고기에게 뜯어먹히는 초강대왕의 나태지옥을 통과하기도 한다. 검수림을 지나 태산대왕에게 혀를 뽑히는 거짓지옥을 지나는 동안 자홍은 자신의 동생이 억울한 죽음을 맞아 원귀가 되었음을 알게된다. 한편 영화속 투트랙 스토리로 전개되어 원귀로 떠도는 동생 수홍은 형의 죽음을 맞고 어머니 곁을 지키려 마음먹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군 전역을 기다리던 중, 총기 오발 실수로 생명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하루 동안 생매장 상태로 있다 사망한다. 수홍의 사망은 대위진급을 앞둔 중위의 근무일지조작으로 탈영병으로 처리된다. 망자의 직계가족이 원귀가 되었을 경우 저승세계를 어지럽히는 이유로 귀인이 49일 내에 재판을 받고 무사히 환생되지 못하는 사태를 막고자 원귀를 태워 없애기 위해 강림차사가 이승으로 돌아와 추적하지만 강림차사는 원귀를 태우지 못하고 저승의 불문율인 이승의 일에 간섭하고 만다. 이후 한빙협곡에서 수조에 넣어 얼려지는 형벌을 내리는 오관대왕의 불의지옥과 죄인을 거울에 가둔다음 깨뜨리는 형벌로 배신지옥을 다스리는 송제대왕의 재판과 진공심혈 절벽아래로 떨어지며 계속 바위에 부딪히는 벌을 내리는 진광대왕의 폭력지옥을 지나 마지막 염라대왕이 최종판결을 통해 천고사막에서 모래수렁으로 빠뜨리는 천륜지옥에 이르기까지는 CG영상의 스펙타클함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의 화려함으로 액션블록버스터 환타지 영역을 넘나들며 스토리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지만 이야기의 주 맥을 이루는 것은 3차사들이 하나 하나 밝혀지는 자홍의 죄들에 대해 시종일관 비의도성, 다시말해 지은 죄와 업들이 김자호이 의도하지 않았음을 변호하는 속에 여정이 지속 된다는 것이다.

▲     © 주간시흥

 

결국 원귀였던 동생 수홍의 억울함을 풀고 이승에서 용서할 수 있는 이를 용서하는 가운데 수홍의 넋은 어머니의 꿈에 나타나 형 자홍이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던 사실과 관련해 15년간의 죄책감을 덜 수 있도록 용서를 구하고 진심으로 용서하는 장면이 염라대왕 최종판결 직전에 펼쳐진다.

 

▲     © 주간시흥



염라대왕은 저승법 11항 이승의 인간이 이미 진심으로 용서받은 죄는 저승은 더 이상 심판하지 않는다. 이에 본 법정은 피고 김자홍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하고 김자홍에게 즉시 환생을 명한다.

지난 721일 주민화합을 위한 찾아가는 야외극장 무대로 마련된 오이도 선사유적공원내 조가비광장에서 첫 번째 상영작으로 준비한 이 영화를 보고는 집에 돌아와 웹툰원작과 영화를 연거푸 재생해보면서 이영화가 대만에서 역대 아시아 영화 흥행 1, 홍콩에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하였고, 더불어 북미, 호주, 싱가포르, 베트남 등 주요 국가들에서 역대급 흥행몰이를 하며, 국제적 신드롬을 이끌어 낸 데에는 인간 심연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은 비슷한 동질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신과 함께-죄와 벌에 이어 김용호 감독의 신과 함께-인과 연의 개봉일이 81일로 예정되어 있다. 1편에 걸맞는 깊이 있는 무게감이 느껴질지 자못 기대된다.

 

신과 함께-죄와 벌영화 속에서 자홍의 삶은 최소한 우리가 누군가를 마음 아프게 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정도의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지만 이 영화의 7재판을 통해 우리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죄와 업이지만 선의와 악의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고의성의 유무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죄를 지음에 있어 선의일지라도 고의성 없이 모르고 저지르는 죄도 엄연히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것이니 업이로되, 더구나 알고 있다는 것은 고의적인 부분으로 악의에 속하니 더욱 경계할 업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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