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흥 기사입력  2018/07/06 [13:37]
[한의학박사 오원교]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
뇌/척추관절 박사 오원교 원장이 들려주는 마음이야기(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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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재생한의원. 한의학박사 오원교

<전호 계속>

자기 파괴적 vs 자기 보존적

조선 선교사역 후 안식년이 되어 십수년만에 거지가 되어 찾아온 쉐핑에게 엄마는 '도저히 너를 이해할수 없구나' 며 문전박대하며 또 한번 버려진다. 한번도 따뜻한 부모의 살가운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쉐핑은 노예나 다름없는 조선의 여자, 한센병 환자,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여 집착에 가까운 자기 희생으로 돌본다.

자기희생은 그녀에게 살아있음, 존재감, 위안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분노와 회한, 그리고 수치심, ‘엄마가 나를 왜 버렸을까?’라는 평생에 풀리지 않는 궁금점.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수치심은 분노를 유발한다.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어야 한다.

수치심은 건강한 자기 탐색 대신에 주눅을 유발한다. 다른이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회피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술이나 마약, 운동, , 관계 중독으로 수치심을 차단하려고 할 수도 있다. 또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거짓된 자아상을 만들고 거만함과 자기도취에 의지하고 비현실적으로 긍정적 자아상을 꾸며냄으로써 수치심과 관련한 자기상을 감출 수도 있다. 수치심을 파괴적인 공격성으로 전환하여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 분노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고 제압하여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함으로써 자기 수치심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체 및 정신적 학대와 방임, 폭력이 유발되기도 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기로 한다.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분노를 자기파괴적 행동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서서평은 자신의 어린시절의 수치심과 분노를 자기에게로 향했다. 매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불규칙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바라보게 되는 그녀의 소박한 소원은 단 한가지였다.

평온함

서서평’(徐平)

쉐핑의 한국 이름 속에 담긴 절박하면서도 소박한 소원. ‘천천히’, ‘평온하게란 이름의 의미가 애절함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이름 속에는 급한 성격을 다잡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얼마나 조선인이 답답했을까? 그러나 성격의 급함은 오히려 문명화되지 않은 조선인에게는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개화는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결실을 맺는 일이었다. 때로는 인간의 급한 성격과 이기심을 다루기 위해 하나님은 상처와 죄를 허락하고 활용하기도 한다.

그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는 선교지에서의 특권의식을 갖고 지저분하고 비천한 조선인들과의 경계를 두며 특수한 지역에서 살았다. 하지만 서서평 선교사는 달랐다. 그녀의 깊은 상처로 야기된 고통스런 정서는 조선인과 똑같이 먹고자고 입기를 자청하게 만들었다. 자기학대, 자기연민을 통한 자기위안은 자기희생으로 승화된다.

자기희생이 자기파괴적인지? 자기보전적인지? 사실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와 죄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와 죄의 대물림, 전염의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상처와 죄가 자기파괴를 넘어 승화되면 누군가는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를 의롭다, 높다 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고립되고 소외된, 학대받아 비참하고 상한 심령, 죄인의 낮은 마음, 수치스러운 마음을 가까이 하는게 아닐까?

상담문의 43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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