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흥 기사입력  2014/06/15 [23:35]
시흥시비전 아카데미 38차 강의 진행돼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박종팔 선수 초청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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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명품 CEO들의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흥시비전아카데미 6월 강의가 지난 9일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컨퍼런스 홀에서 박종팔 전 프로복싱 WBA세계챔피언을 초청 강의를 진행했다.

이날 강의에 나선 박종팔 선수는 지난 선수시절 당시 국민들을 열광하게 했던 박 선수의 주요한 경기들을 소개하며 옛날 열기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
 
이어 진행된 강의는 박 선수가 지난 선수시절의 화려했던 시절과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이후 대회 개런티로 벌어들인 거액의 재산들을 짧은 기간에 탕진하고 신용불량자로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이르게 된 상황과 이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계기 등 자신의 인생 3라운드를 설명하며 굴곡진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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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팔 선수는 자신의 고향이 전남 무안이라고 소개하며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던 어린 시절 동내의 말썽꾸러기로 동내에서 시끄러운 일들을 만들어 내며 눈총을 받고 있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동네 어느 집 TV에서 유재두 선수의 권투 중계를 보던 박종팔은 복싱에 매력을 느껴, 복싱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이를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채농사를 짓던 집에서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던 박종팔은 서울로 몰래 상경하겠다는 거사를 계획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챙기기 위해 농사중인 유채 씨 수확에 전념해 최대의 수확을 하고 이를 몰래 이웃동내에 내다 팔아 뭉치 돈을 손에 쥐고 서울로 상경하기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행 기차에서 쉽게 먹을 수 없던 삶은 달걀을 마음껏 사먹으며 서울역에 도착한 박종팔은 서울역 앞에서 사람을 모아놓고 벌이는 눈속임의 사기놀음꾼들에게 당해 유채씨를 팔아 마련한 거액의 자금을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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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털터리가 된 박종팔은 사촌형이 흑석동에 가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이곳을 찾기 위해 나서 몇 시간동안 물은 물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걸어서 거의 탈진 직전 형수님을 만나, 형님 가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소식을 안 아버님으로부터 쌀이 보내져 이를 찾으러 용산역에 다녀오는 길에 노량진에 복신 체육관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바로 체육관에 등록해 복싱을 시작하게 됐다.

시작한지 몇 개월 만에 신인왕전에 출전한 박종팔 선수는 그해 미들급 신인왕에 등극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신인왕 교류전에 출전하게 됐다.

일본 신인왕전에서는 앞서 출전한 선수들이 모두 패하여 링에서 내려오자 박 선수 상대 선수가 기가 살아 있었으나 게임이 시작하면서 한방을 맞은 일본선수는 쓰러져 KO로 승리하여 수상을 하고 링에서 내려올 때까지 상대 선수는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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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재일교포 어르신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것을 보고 복싱을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당초 계획에는 귀국 전에 한게임을 더하기로 했지만 상대 선수가 포기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게임을 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됐다.

귀국후 한국챔피언에 도전했다 1회 KO패를 당해 더 이상 자기를 반길 사람이 없어 물러설 곳 없던 박종팔 선수는 이때부터 복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복싱에 대한 생각만하고 운동을 하면서 상대의 주먹을 피하는 것이며 힘을 모아 상대에 주먹을 날리는 것 등 걸어 다니거나 잠을 자면서까지 연구를 계속했으며 복싱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됐으며 이때부터 승승장구 한국 챔피언, 동양챔피언 등을 거머쥐게 됐으며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이후 동양챔피언을 자진 반납하고 IMF에 도전하여 챔피언 벨트를 차게 됐으며 그동안 한국선수로서 27차 대전에서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한 미국시장에 진출하며 IMF4차 방어전을 치루고 최초로 승리함으로서 세계적인 선수로 등극했으며 친구인 김득구 선수의 한을 풀어 줄 수 있었다.

이후 WBA도전에서는 다운을 당하기도 했으나 일어나 역전 KO승을 거둠으로서 박종팔 선수의 주가는 더욱 높아지고 개런티가 더욱 많아지면서 1개임에 서울 유명 아파트 10채씩을 구입 할 수 있는 거액의 파이트머니를 받아 돈방석에 앉게 된다.
여기까지가 박종팔 선수의 화려했던 1라운드 인생이다.

그의 전적이 말해주 듯 엄청난 승리를 통해 받은 돈은 주로 부동산을 구입하는데 사용 했던 박 선수는 은퇴 후 부동산만 29개소나 되는 거액의 재벌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선수생활에는 모든 것이 안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박 선수는 호된 사회 경험을 하게 된다.

먼저 후배들을 기르기 위한 체육관을 선택하고 2년여 체육관을 운영하고 세계챔피언 전초전을 치루기 위해 준비 했으나 문제가 발생되면서 대회가 무산되고 이로 인해 초청 선수들에 대한 개런티를 포함하여 모든 경비를 전액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일이 발생되고 이로 인한 큰 피해를 입게 됐다.
 
약속을 어긴 유명인사에 화를 참지 못한 박 선수는 폭행 업무방해 등으로 몰리면서 구속이 되기도 하고 술집을 운영하면서 외상, 어음부도 등의 악재가 계속되면서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하나씩 팔아 메꾸는 일이 계속 되면서 재산은 순식간에 탕진됐으며 결국 신용불량자로 까지 몰리는 상황이 되었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면서 결국 인생 2라운드는 폐인이 되어 있었던 순간이다.

이때 귀인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하고 사람이 바로 지금의 부인이라고 설명한다.

주변의 반강요로 만나게 된 부인을 보자마자 자신을 잡아줄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고 계속 만남을 위해 재산이 많은 것으로 속였으나 금새 탄로가 나 부인이 손을 잡고 챔피언으로 다시 일어나라며 부채를 모두 갚아주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줌으로서 박종팔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제3라운드의 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잃었던 건강을 회복하고 체육관을 열고 세계무대에 내놓을 후배양성에 전념하고 있으며 다이어트 체육관으로도 인기를 얻어 운영하고 있으며 기복 많았던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는 강의에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다시 재기의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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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팔 선수는 자신의 살아왔던 일들을 소상하게 설명하며 “처음에 사회를 모를 때는 누구의 말도 다 믿으며 살았으나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고 말하고 “힘들어도 일어나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며 일어나면 다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디에서도 저의 팬들이 부르면 어디든 달려갑니다.”라고 말하는 박종팔 선수의 강의에는 선수시절 강력하고 집중력 있는 도전정신 또한 자신의 분수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는 시간으로 의미를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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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의는 5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강의 전에는 전석교 운영위원장이 새로 운영위원회 임원으로 선임된 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임원들의 활동 각오를 듣는 시간을 가졌으며 아카데미회원으로 활동하며 이번 선거에서 3선 시흥시장으로 당선된 김윤식 시흥시장의 당선소감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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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흥시비전아카데미는 현재 60여명의 회원들이 정회원으로 활동하며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역에 모범적인 명품 CEO모임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으며 오는 7월 강의는 회원들의 더욱 끈끈한 우정이 쌓기 위해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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