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 기사입력  2009/07/21 [00:08]
정도전과 이성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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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1342년 아버지 운경과 어머니 단양 우씨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봉화이며 대대로 향리 집안으로 모친인 우씨는 우연의 딸이었다.

그런데 우연의 처, 즉 정도전의 외조모인 김씨는 우현보의 인척인 승려 김전이 그의 노비인 수이의 처와 간통하여 낳은 자식이었고 정도전의 부인인 최씨도 장인인 최습이 첩에게서 얻은 자식이어서 양쪽 부모 중 한쪽이라도 천인이면 천인 취급을 받던 그 당시의 신분풍습에 의한다면 정도전은 천상 천인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러한 그의 가계는 그를 늘 따라다니는 짐이 되었고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일찍부터 역성혁명을 꿈꾸게 하는 큰 동기가 되었다.

정도전은 개경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당대의 유학자인 이색의 문하에서 정몽주, 이숭인, 이존오, 윤소종 등의 인재와 함께 수학하였다. 그가 목은의 문하에 들어간 것은 목은의 부친인 이곡과 정도전의 부친인 운경이 동문수학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1360년(공민왕 9)에 정도전은 성균관에, 1362년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당시 공민왕은 고려의 중흥을 위해 새로운 인재를 집중적으로 등용하고 있었기에 왕의 신임을 받아 승진을 거듭할 수 있었다.

1366년(공민왕 15)에 잇달아 부친과 모친을 잃게 되자 고향인 영주로 내려와서 3년간의 시묘살이를 하면서 틈나는 대로 이 지역 사람들에게 주자학을 가르쳤다.

1370년(공민왕 190에 성균관이 중영되면서 그의 스승인 이색과 동료들이 책임을 맡자 정도전을 중앙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정도전은 성균관에서 성균박사라는 관직을 갖고 봉직하며 이 기간 동안 그의 성리학적 교양을 더욱 심화시켰다.

우왕이 즉위하면서 평탄하던 정도전의 생애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선대왕인 공민왕이 추진하던 반원정책을 뒤엎고 원과의 친교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도전은 동료들과 함께 친원정책에 대해 극렬하게 저항하다 파직되어 귀양가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9년간 야인생활을 하면서 전국각지를 떠돌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갔다. 이 기간 중 정도전은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몸소 살피면서 위민(爲民)사상을 정립하며 세상에 대한 반감을 새 시대를 준비하는 큰 뜻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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