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흥 기사입력  2018/09/13 [15:07]
박주선 대표 봉사의 인생 시작
식당서빙에서 정밀가공업체 대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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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시흥

 

스스로 찾아가 지역사회활동을 시작한 박주선 삼호 대표는 최근 지역을 위한 봉사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다.

최근 시흥시 신천동 주민자치회장을 맡아 소래산 효 거리문화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 활동에 팔을 걷고 앞장서서 지역봉사에 큰 보람을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전포커스는 부잣집의 막내딸로 태어나 오랫동안 식당서빙으로 아이들을 키우던 그녀가 남성들도 하기 어려운 정밀기계가공 제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해오고 있는 박주선 대표를 밀착 취재하여 그의 인생 역전드라마를 조명한다. (편집자 주)

 

삼호정밀 못하는 것이 없다.’

정밀기계 가공업체로 이미 자동차 부품 정밀가공 분야의 작지만 강한 기업 삼호정밀.

우리 회사는 정밀 가공에 관련해서는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발주처에서 가공이 어려운 부품들은 우리 회사에 오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이제는 정밀하고 어려운 제품만을 골라 가공하고 있다.”고 말하는 박주선 대표는 항상 자신감이 가득하다.

삼호정밀이 이런 강점을 갖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신천동 공단 내에 작은 공장으로 주변이 자동차 정비업체 등이 즐비하여 어수선한 가운데 유독 내부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공장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전 직원이 8시 반 출근인데도 전 직원이 8시면 자발적으로 출근해서 업무 준비를 한다.

회사의 아침 문은 항상 박 대표가 연다.

아침에 제일먼저 출근해서 주변을 정리하고 회사밖에 앞마당부터 청소하는 박 대표는 모든 일을 앞장서서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박 대표의 중요한일 중 하나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 주는 일이다.

요즘에는 직원들이 일하는 옆을 지나가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직원은 느낌으로 금방 알아내는 능력이 생겼다.”라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직원 있으며 바로 곁에서 일을 도와주며 말을 걸고 컨디션을 회복시켜 퇴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낸다.

박 대표가 인터뷰 중 몇 번씩 강조하는 말이 사내에서 생산되어 납품되는 제품들이 너무나 예쁘다.’는 것이다.

다행히 요즈음 제조업의 경기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일감이 없어 못하지 않으며 오히려 단가가 맞지 않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뜸 한다.

박 대표의 기업경영은 회사를 키우기보다는 운영에 내실을 기하여 직원들이 만족한 직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라며 10인 이상의 기업이 되면 오히려 내실을 기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내실 있는 기업 운영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방침들이 삼호정밀을 작지만 강한 회사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저력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식당에 서빙 하던 부자집 막내딸이 제조업을 시작

박주선 대표의 고향은 전북 전주이다. 전주에서 가장 크다하는 젓갈 판매상회의 부자 집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나 주위에 부러움을 사며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늦둥이 막내딸을 시집보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던 박 대표의 부모님은 급한 마음에 갓 22살 나이의 철부지를 일찍 시집보내게 되면서 박 대표의 사연 많은 인생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기계가 전공이며 기계판매 오파 상을 잘 해오던 부군이 재도약을 위해 사세를 넓히려 준비했던 기계판매 사업체가 개업도 하기 전에 화제로 전소되면서 전 재산을 잃게 됐다.

전의를 상실한 부군이 외국으로 훌쩍 떠나면서 가족들의 별거 생활이 시작됐다.

남매를 둔 아이를 키우기가 막막했던 박 대표는 당시 체인점으로 인기를 끌었던 ‘xx 보쌈집에서 식당 서빙 일을 시작하게 된다.

무엇이든 열심히 내 것처럼 하는 성격인지라 한곳에서 5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근무 어린자녀들을 키우며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막노동에 몸이 만신창이 됐다.

마침 외국에서 돌아온 부군이 다시 사업을 시작했으나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하던 동업자와의 불편함 등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꾸려가기 쉽지 않게 되자 드디어 박 대표가 사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손에 쥔 돈은 고작 120만원.

당시 다행인 것은 고정적인 가공 일거리가 있었던 것.

부군을 뒤로 두고 전면에 나선 박주선 대표는 나름대로 사업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난생 처음으로 친정에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게 됐다.

일정금액의 지원을 받게 된 박 대표는 부천 삼삼성반도체 근처 허름한 지하공장에 거점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항상 긍정적이고 자신감으로 기업경영을 해온 박주선 대표는 불량제로의 기술력, 철저한 납기 등을 기업의 강점으로 부각시켜 거래처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주변 부군의 지인들로 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회사가 매출이 늘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 대표에게는 또 한 번의 역경이 닥쳐왔다. 국가의 경제 난국이던 IMF가 다시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일부 발주처로 부터 부도를 맞고 채권자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으면서 부도어음들을 막기 위해서 공장을 처분해야할 처지에 몰린 박 대표는 채권자 모아놓고 협상을 시작했다.

채권자들을 슬기롭게 설득하여 일을 하면서 조금씩 갚아 나가기로 하고 합의하고 다시 공장 가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이후 채권자들에게 경영 상태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이익의 일부는 직원들 봉급으로 일부는 부채 갚는데 사용하며 열심히 운영해온 결과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 후 기계를 하나씩 늘여 나가며 이제는 복합가공기 등 고가의 정밀가공 기계 10여대를 보유하게 됐다. 또한 은행에도 신용을 잘 지키다 보니 은행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게 됐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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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정밀 제2의 도약은 시흥에서

시흥시 안현동 외딴 곳으로 공장을 옮기고 새로운 기계를 늘여가며 제2의 도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당시가 공장에서 살림을 하면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챙겨야하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으며 공장이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직원들의 구인도 쉽지 않았다.”라고 힘들었던 당시의 상황들을 기억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털어 놓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업의 신뢰도를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내회사라는 생각으로 회사에서의 자기역할 분담을 충실해왔던 장기근속자들의 공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처음부터 수익이 많지 않은 힘든 가공부터 시작했으나 지금은 어려운 일만 골라서 한다.”라며 직원들의 기술력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매우 높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종업계로 부터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힘들 일들은 삼호정밀에 가면 해결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갔으며 이로 인해 삼호정밀의 매출은 안정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3년 전 신천동에 현재의 공장을 마련하고 나면서부터 안정적인 괘도에 올라선 삼호정밀은 기업경영에도 조급함이 덜하게 됐다.

이제는 직원들이나 주변 지인은 물론 지역사회에 조금씩 베풀며 살아가고 있다며 그동안의 역경들을 즐거운 추억으로 생각하며 기업을 운영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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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 대표의 지역 활동

박주선 대표가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법을 잘 지킨다. 살면서 큰 후회되는 일들은 없었으며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은 평소에 도 막연하게 갖고 살아왔다.”고 전한다.

대야복지관을 비롯해 이미 여러 곳에 후원을 해오고 있던 박주선 대표의 지역 활동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으며 불과 5~6년 전이다.

지역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던 건강 마을학교교육 홍보물을 보고 직접 찾아가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회활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신천행복건강센터 운영위원회 회장을 맡게 됐다.

자치분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고 최근에는 신천동 주민자치회장을 맡으면서 주민자치위원들과 다양한 지역 마을 만들기 사업은 물론 지역 축제 등을 기획 추진하는 등 바쁜 지역사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현재 신천행복건강센터 고문으로 시흥시 자치분권 위원, 시민협의체 위원, 시흥시 건강도시 만들기 위원 등으로 지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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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을 쓸어 담는 박주선 대표의 인생철학

저는 빗자루 질을 저의 회사 안으로 합니다. 복을 쓸어 담는 것이지요.”라며 말하며 복을 쓸어 담는 일을 실천해보면 진짜 복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에 성공한사람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강의 핵심은 대부분 배려, 감사이다.”라고 말하는 박주선 대표는 이제 돈은 내려놨다.”고 말하며 돈에 탐하지 않으며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돈이 많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밥은 내가 살려고 한다. 70까지는 돈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돈쓰는 것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이제는 주변에 봉사하고 베풀며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것에 후회는 없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회사에서 납품을 끝내고 하늘을 보면 모든 것이 다 내 것 같은 행복함에 젖게 된다.”며 회사에서 가공하는 제품이 가장 예쁘다고 강조하는 박주선 대표 기업경영에 성공한 여성기업인으로 오래 동안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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