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흥 기사입력  2014/04/07 [15:19]
한국인 최초 분데스리거 박종원 축구선수
마지막 축구인생 시흥에서 청소년 봉사 꿈꿔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박 종원      © 주간시흥


왕년의 축구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한국 최초의 분데스리그 선수로 활약을 펼쳤던 박종원 전 축구 국가대표선수가 시흥시에서 아이들을 위한 축구봉사를 꿈꾸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     © 주간시흥



70년대 중 후반에 국가대표선수로 이름을 올렸던 차범근, 허정무, 박창선, 김강남, 박성화, 김재한, 김호곤, 조광래 등과 함께 국가대표 축구팀 선수로 유명세를 누렸던 박종원 선수가 시흥에 적을 두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부터 이다.

당시 정왕초 축구감독이 자리를 비우게 되어 잠시 박종원 선수는 고문이라는 직함으로 아이들을 잠깐 지도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시흥시와 인연이 되어 오이도 이주민 단지에서 지금껏 살고 있다.

한동안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리며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박종원 선수는 고2시절이던 1972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인 73년도에는 전국고교상비군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으며 명성을 쌓아갔다.


▲     © 주간시흥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외국 팀의 스카웃터들에게 눈길을 끌기 시작했으며 1980년에는 국가대표팀으로 킹스컵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하면서 최다득점상(8골)에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쥐었고 귀국 직후 바로 독일 분데스리가 카우저스라우테른(당시 리그 4위 팀)에 입단계약을 하고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     © 주간시흥



분데스리가 리그에서도 관심을 모으며 화려한 선수생활은 하던 박종원은 러시아(구 소련)에서 벌어진 유럽 컵 경기에 출전해 모스크바 붉은 광장 스타디움에서 경기도중 허벅지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선수생활에서의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됐다.

이때부터 선수로서 급하게 내리막기로 들어서 벨기에 1부 리그를 거쳐 대우로얄즈 축구단에 입단하면서 사실상 화려한 선수생활에 종착역이 되어 버렸다.


▲     © 주간시흥



적극적인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며 가슴에 멍이 든 박종원은 화려한 축구의 인생을 은퇴식조차 하지 못하고 축구계를 떠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건축자재를 수입 판매하는 사업을 펼치며 안정적인 사업가로 성장해 오면서 비교적 안정을 찾아 사업가로 변신하여 성공을 목전에 두었던 박종원은 건축자재 수입에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해 결국 그동안 일궈놓았던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골이 깊은 인생을 경험한 박종원은 국내 대학축구감독 공채 1호로 다시 축구로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     © 주간시흥



1994년 한성대 축구 감독을 맡게 된 박종원은 한성대축구팀이 창단 1년8개월 만에 전국대회 3위를 달성하면서 한성대 교수로 임용되는 등 다시 새로운 축구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의 막이 열리는 듯 했으나 학교재단의 문제로 축구팀이 해체 되면서 1998년 다시 축구 지도자의 꿈을 접어야 했다.

신설 프로축구팀 감독으로 내정되기도 했으나 주변에서의 모함 등으로 무산되는 등 가슴앓이가 계속됐으며 그러던 중에 정왕초등학교와 인연이 되어 시흥시에 오게 된 것이다.


▲     © 주간시흥



시흥시에 터전을 잡게된 박종원 감독은 선수로서 못다 이룬 꿈을 축구지도자로 다시 한 번 도전하기 위해 한성디지털대학교 축구팀을 창단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이나 프로 입단을 하지 못한 4등급 이하의 선수들을 불러 모아 강도 높은 훈련을 시작했다.


▲     © 주간시흥



‘무에서 유를 만들어 간다.’라는 마음으로 굳게 무장한 박종원 감독은 자비를 들여 기숙사를 마련하고 옥구구장을 이용하여 훈련을 시키며 선수들을 키워갔으나 공을 들인 만큼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결국 팀을 계속 이끌어 갈 수가 없게 됐다.

충청도 출신으로 말이 적고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축구계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않다보니 설자리가 마땅하지 않았다.

축구에 대한 인연이 여기까지로 생각하며 오이도에서 조용히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박종원 왕년의 축구 대스타가 최근 다시 일어섰다.
새로운 할 일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한 일은 다문화 가족 2세와 북한 이탈주민 2세 들이 한국의 생활에 적응하도록 하기위해 한자리에 모아 축구를 가르치며 축구를 통해 한국생활에 적응력을 키워가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며 새로운 봉사 일을 시작한 박 감독은 다문화 아이들이 한국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국아이들과 가까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다시 더 큰 걸음을 걷기로 했다.

다문화, 북한 탈주민과 한국 내에 복지 지원이 필요한 소외계층의 자녀들을 한곳에 모아 축구와 운동을 통해 같이 생활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를 빠르게 익히게 하며 축구에 자질이 있는 아이들은 발굴하여 선수로 키워내고 나머지 학생들은 건강을 바탕으로 하는 취미활동으로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시흥시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시켜 가겠다는 큰 계획을 세우고 대시 제3의 축구인생을 봉사활동으로 펼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박종원 감독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시흥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에세이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광고
광고